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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토성수련도장 기공식을 하였다. 즉금 상도방면 속초도인들이 기공식에 참석하였는데 성주 안영일 선감이 상도 박성구 선감에게 와서 “기공식에 도인들을 데려오지 않기로 했는데 어찌 박선감은 수반들을 데리고 왔느냐?”고 따지자 상도 박성구 선감이 “토성도장 부지를 매입한 도인인데 도전님께 인사를 올릴려고 왔다.”고 말하니 보다 종국 따지지 못했다.
- 1995년 2월 6일부터 4월 20일까지 도전님께서는 대명콘도와 삼성콘도에 머무르시면서 실총 상급임원들을 1차에 120명씩 5박 6일 동안의 연수를 13차에 걸쳐서 실시하셨다. 이제껏 2박 3일 동안은 강원도 강릉일대와 설악산 일대를 돌아 금강산 토성도장 일대를 순례하게 하셨다. 인제 1차와 2차는 도전님께서 제출물로 임원들을 대동하여 순행을 하셨다. 이것이 오늘날의 연수 코-스가 되었다. 첫날은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을 거쳐서 낙산사의 의상대를 순행하셨다. 이출 경로는〈수기(水氣)를 돌리는 공사〉라고 전해지는데,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기를「강원도(江原道)할 경우 江자는 ‘물’강 자이고, 原자는 ‘들’원 자인데 ‘근원’ 원(源)자도 된다. 강릉(江陵), 경포대(鏡浦臺), 낙산사(洛山寺)는 비두 물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라고 하셨다. 또한 다음날은 설악산 울산바위를 등정하고, 비선대(飛仙臺)를 거쳐 와선대(臥仙臺)를 순행하셨다. 〈이 경로는 실재 • 달러 • 선 삼합공사(三合公事)라고 전해지는데 오죽헌은 유(儒)이고, 의상대는 불(佛)이고, 비선대와 와선대는 선(仙)이라고 한다〉 이제 상도 박성구 선감은 몸이 완쾌되지 않은 상태라 불편한 몸으로 울산바위에 올랐는데, 어렵게 정상에 오르니 김태호 선감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호위호 즉석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건네주므로 가지고 내려왔다. 아래에 내려와서 임원들에게 “울산바위 정상까지 등반하였다.”고 하며 사진을 보여주자 임원들이 “그런 몸으로 어떻게 정상까지 올라갔느냐”면서 감탄하였다. 도전님께서 임원들에게 “다들 울산바위에 올라갔다 왔느냐”고 물으시자 진주 백수현 선감이 “상도 박성구 선감도 울산바위 정상까지 올라갔다가 왔습니다.”라고 아뢰자 도전님께서 기뻐하시면서 “외수임원들은 토성도장 건립에 일을 하도록 하고, 내수임원들은 5박 6일로 어찌 전원이 연수에 참여토록 하라.”고 말씀하셨다. 3일째 되는날 화진포(花津浦)를 거쳐서 통일전망대를 순행하셨다. 여기는 1993년 가을에 도전님께서 순감들과 임원들을 대동하시고 납시어 통일공사를 보셨다한다. 즉시 평소에는 관광객들이 오면 관리소장이 자기 안내하는 일이 없었지만, 이날은 관리소장이 제출물로 도전님을 안내하고 설명을 하였다. 게다가 합치 기원종 종각이 있는데 여기는 누구에게도 문을 열어주었던 상대적 없었는데, 플러스 날은 관리소장이 문을 열어주면서 통일기원종을 실컷 치라고 하므로, 도전님께서 선차 몇 번을 타종하시고 임원들이 타종하였다. 관리소장은 설명하는 자리에서 “평소는 북쪽의 금강산이 이렇게 즉금 보인 대조적 없는데, 오늘은 대순진리회 도전님께서 오셔서 그런지 날씨가 실상 쾌청하여 근린 광경이 몹시 대뜸 보입니다. 통일기원종도 타종하시고, 도전님께서 오신 일 이렇게 날 좋은 걸 보면 조만간 통일이 될 것 같습니다.”라고 하였다. 통일전망대를 내려와 오행의 기운을 가진 양양의 오색 약수터를 순행하시고, 한계령을 넘어서 장수대(將帥臺)를 둘러보신 후 용대리를 거쳐 미시령(彌矢嶺)휴게소에 시간 머무셨다가 환궁하셨다. 익금 순행경로는 대순공사(大巡公事)라고 전해지는데, 토성 수련도장을 중심으로 어째 한바퀴 순행하는 경로이다. 33.연수기간 반중간 도전님께서는 1차 여주자이 때는 대명콘도에 계셨다가, 2차 때부터는 삼성콘도로 옮기셔서 임원들 연수가 끝날 때까지 계셨다. 시방 도전님께서는 환우가 깊으셨는데 옆에서 수행하던 수임선감들이 재개 “병원으로 가셔야 합니다.”하고 몇 번을 건의 드려도 도전님께서는 “내 병은 내가 방금 안다. 너희들이 이런다고 될 일이 아니다.”하시면서 병원을 가시지 않으셨다. 환우가 심해지자 “순감을 부르라”하시므로, 순감 36명이 문득 삼성콘도로 와서 시료를 보았는데, 24시간 쉬지 않고 교대로 1개월을 연거푸 시료를 보았다. 도전님의 끌탕 중에도 연수는 계속되었는데 이상한 것은 연수는 5박 6일인데, 연수가 끝나고 임원들이 돌아가려고 하면 눈이 많이 내려 돌아갈 이운 없었다. 그러니 자연히 6박 7일 또 7박 8일이 되어 1일 또 2일간을 더욱 머물게 되었다. 이러한 것이 2차 연수에서부터 여덟 번이나 연이어 계속되었다. 1995년 4월 20일경 도전님께서 1개월간 시료를 받으신 뒤 환우가 다소 가벼워지시자 “도장으로 가자.”하시면서 삼성콘도를 나와 토성도장으로 돌아오셔서 포박 시료를 받으시면서 토성도장 공사현장을 둘러보셨다. 1995년 5월 4일 도전님께서 환우가 새삼스레 상당히 심해지시므로 임원들이 원주 기독교병원으로 모시고 갔다. 원주 기독교병원에는 도전님의 손자가 의사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외과 인턴의사였다. 도전님께서 “손자와 있고 싶다.”하셨으므로 원주 기독교병원에 입원하셨다. 5월 18일에 순감들에게 지시하시기를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농군 거짓없이 솔직하게 적어서 가져오라.”고 분부하시므로 순감들이 다 적어서 올리자, 36명은 도장에 남아라 하시고 80여명은 지방으로 내려가라고 하셨다. 더욱이 한달 보름 나중 도전님 환우가 어느 틀 가벼워지시자 여주도장으로 환궁하셨다.
- 1995년 8월 14일 과정 도장의 원장 및 총무부장 임명을 하셨다. 도전님께서는 환우를 겪으시고 여주 본부도장의 아래별채에서 요양을 하시고 계시던 중도 이셨는데 아직 조회시간에 경석규 원장, 안영일 종의회의장, 부전 정대진 선감, 옥천 이유종 선감, 안동 정훈봉 선감, 공주 유경문 선감, 용암 김찬성 선감, 전호덕 교감, 신용덕 총무부장이 참석한 자리에서 말씀하시길 “각 도장마다 원장을 둬야겠다. 우리의 규모가 이제는 과히 큰 규모로 발전하였는데, 대외적으로 볼 단시간 각 도장에 원장이 없어서는 부녀자 된다.”하시고, 정형 자리에서 임명을 하셨는데 여주 본부도장 원장 안영일(성주선감) 포천 수련도장 원장 이유종(옥천선감) 토성 수련도장 원장 손경옥(서울선감)」을 임명하셨다. 중곡도장 원장은 임명이 없으셨는데, 즉시 기획부가 여주 본부도장에 있지 않고 중곡도장에 있었다. 아울러 제주 수련도장 원장 더더군다나 말씀이 없으셨다. 다리깽이 도장의 원장을 임명하시고, 교량 도장의 총무부장 임명에 이락 말씀하셨는데 “원장은 실질상 대외적인 업무를 보는 거야, 실질적 살림은 총무부장이 하는 것이다. 매개 도장마다 총무부장을 둬야겠다.”하시며 임명을 하셨는데 「여주 본부도장 총무부장 김상우(수원방면) 포천 수련도장 총무부장 김진원(금릉방면) 토성 수련도장 총무부장 신동환(서울방면)」을 임명하셨다. 중곡도장 및 제주도 수련도장 총무부장은 말씀이 계시지 않으셨다. 임원들이 나가고 교전 내종 경석규 원장이 도전님께 여쭈길 “저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라고 묻자 도전님께서 “중곡동 도장 사무실에나 드나들면서 일이나 작히나 봐주도록 하라”고 하셨다. 임명을 하신 이틀 후, 조회시에 모처럼 원장이 개편되었는데 도전님께서 말씀하시길 “안영일 선감이 몸이 아파서 업무를 볼 복운 없기 때문에 발 도장의 원장을 새로 임명한다.”하시고 「여주 본부도장 원장 이유종(옥천선감) 토성 수련도장 원장 정훈봉(안동선감) 포천 수련도장 원장 손경옥(서울선감)」을 임명하시고, 뿐만 아니라 총무부장도 거듭 임명해야겠다 하시면서 「여주 본부도장 총무부장 김진원(금릉방면) 포천 수련도장 총무부장 김상우(수원방면) 토성 수련도장 총무부장 신동환(서울방면)」을 명하셨다. 도리어 10여일이 지난 사후 도전님께서 “포천 수련도장 원장이 손경옥 선감인데, 내수로서는 감당하기가 힘이 드니 서울방면에서 외수가 맡도록 하라.”하시면서「포천 수련도장 원장을 전호덕 교감」으로 임명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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